2005.5.25 (수) 18:58  

오는 7월20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함께 서는 지휘자 금난새씨(58·사진 왼쪽)와 재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27·사진 오른쪽)이 첫 만남을 가졌다. 본사가 진행하는 ‘잃어버린 가족찾기 캠페인’ 문화이벤트의 하나로 기획된 ‘가족사랑콘서트-리처드 용재 오닐 & 유라시안 필’ 공연이 처음 준비에 들어간 것은 벌써 8개월여 전의 일이지만 정작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6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6층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습실. 리처드 용재 오닐이 두번째 내한독주회를 마치고 미국 뉴욕으로 돌아가기 직전 유라시안필 연습실을 방문하면서 두 음악가의 만남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두 사람은 첫 대면에도 불구하고 마치 ‘10년지기’처럼 음악과 인생에 대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금난새(이하 금)=지난 6일부터 15일까지 펼친 내한 독주회는 잘 끝났나.

▲리처드 용재 오닐(이하 용재)=이번에 한국에 와서 다섯차례 독주회를 가졌는데 아주 만족스럽다. 티켓도 제법 많이 팔린 것 같고 지난달 내놓은 음반도 아주 잘 팔린다. 공연기획사 크레디아에 따르면 온라인 음반 판매 사이트인 핫트랙 클래식 부문에서 3주 연속 1위를 달리는 등 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KBS ‘인간극장’에 방영된 나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보고 생애 처음으로 클래식 공연장을 찾았다는 분들을 만났을 때 가장 기뻤다. 클래식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내가 조금이나마 기여한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았다.

▲금=오는 7월 파이낸셜뉴스가 마련한 ‘가족사랑콘서트’에서 월튼의 ‘비올라 협주곡’을 연주할 예정인데 이 곡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용재=비올라라는 악기를 가장 잘 이해하고 가장 적합하게 그 악기의 장점을 알릴 수 있는 곡이 바로 월튼의 ‘비올라 협주곡’이다. 관객들이 듣기에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곡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월튼, 모차르트, 베를리오즈 등의 음악을 좋아하는데, 이번 곡은 바이올린에서 비올라로 전공을 바꾸면서 처음 배운 곡이어서 특히 애착이 간다. 내가 남가주대(USC) 콩쿠르에서 우승해 영뮤지션 파운데이션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을 때도 이 곡을 연주했다. 나에게는 여러가지로 의미 있는 곡이고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곡이다.

▲금=우리는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4번’을 골랐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페르귄트 모음곡’ 중 ‘아침의 분위기’ ‘오제의 죽음’ 등 몇몇 곡은 이번 콘서트의 분위기와 잘 맞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리처드 용재 오닐과 함께 연주를 한다는 점이다. 전쟁고아로 미국에 입양된 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성장한 용재가 밝고 명랑한 청년으로, 그리고 훌륭한 연주자로 성장했다는 것이 참으로 대견스럽다.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미아 및 해외입양아 문제를 다시 한번 환기시키기 위해 기획된 이번 공연의 주인공은 바로 리처드 용재 오닐이다.

▲용재=음악이 우리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금=음악은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물한다.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잘 하는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사회에 꼭 필요한 오케스트라를 지향한다. 우리가 수많은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지방 소도시, 문화적으로 소외된 곳 등을 찾아다니며 연주회를 펼치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물하기 위해서다.

▲용재=나는 어린시절을 전체 인구가 3000여명에 불과한 아주 작고 가난한 마을에서 보냈다. 음악을 공부하고 난 뒤 첫 연주회를 했을 때가 기억나는데, 나의 생애 첫 무대는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을 관객으로 한 양로원 강당이었다. 당시 나의 연주 실력은 아주 형편없는 것이었지만 내 연주를 듣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음악이 이렇게 사람들을 위로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음악은 가난한 사람과 부자, 젊은이와 늙은이, 여자와 남자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고 서로를 소통시켜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금=뉴욕에 거주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곳 생활은 어떤가.

▲용재=어린시절을 LA 인근에서 보내고 대학도 LA에 있는 남가주대를 나왔지만 지금은 뉴욕에 둥지를 틀고 있다. 줄리아드 음대 강효 교수가 이끄는 세종솔로이스츠와 링컨센터 챔버뮤직 소사이어티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주로 실내악 연주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실내악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편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가.

▲금=좀 그런 편이다. 내가 지난 1월 처음으로 ‘제주 뮤직아일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챔버뮤직 페스티벌을 연 것도 실내악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활성화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다. 용재도 언제 기회가 되면 우리 페스티벌에 한번 와서 같이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용재=초청해주면 언제든지 함께 하고 싶다. 실내악은 원래 30∼40명의 적은 청중 앞에서 하는 것이 제격인데 1000∼2000석이나 되는 큰 공연장에서 실내악 공연을 올리는 것을 자주 봤다. 상업적인 이유 때문이겠지만 매우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금=지난해 첫 독주회 때는 어머니와 함께 방한했는데 7월 공연 때도 함께 오나.

▲용재=이번 공연에 어머니가 함께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어머니가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시면 모시고 올 생각이다. 마음 같아서는 집집마다 다니면서 한국에 있는 어머니의 가족을 찾아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바쁘게 살다 보니 어머니를 잘 챙겨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혈육을 찾을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어머니가 무척 실망하고 슬퍼했다. 앞으로 한국에 올 기회가 자주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꼭 어머니의 가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금=나도 지난 74년 유학길에 오를 때 실제로 입양아를 데리고 프랑스 파리까지 간 적이 있다. 그때 그 아이가 지금은 30대 중반의 어른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사회적 편견과 인식이 바뀌고, 한 사람이라도 더 가족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로서는 더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정리=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