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2003-06-17 (특집) 인터뷰 05면 03판 4683자    
  
    
최병렬은 내가 만난 6명의 후보중에서 가장 논리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기자의 글로서는 매우 적합치 못한 것이다. 기자는 주관적 판단을 가급적 배제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변명은 이런 것이다. ‘논리적’(logical)이라 하는 말이 꼭 최병렬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는 내가 알 수가 없다. 후보들의 최대 관심사는 도올의 붓이 선거득표에 어떻게 작용할지에 관한 것임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나의 주관적 사실을 숨길 생각은 없다. 나는 모든 후보들의 장점을 드러낼려고만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틀러’라는 별명 때문에 좀 으시시한 기분으로 그를 찾아갔으나 그는 매우 온화한 사람이었으며 매사에 논리적인 틀을 가지고 접근했다. 물론 조선일보사 편집국장을 햇수로 6년이나 지낸 인물이라면 뭔가 언어적 틀이 없이 사람이나 사태를 보는데는 오히려 익숙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해도 내가 만난 정치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논리적인 사람이었다. 그 말인즉슨 곧 상대방의 논리의 핵심을 잘 파악하고 또 자신의 논리로서 즉각 대응하는 방식이 매우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아참∼ 또 한가지, 내가 만난 6명의 후보가 모두 내 인생에서 처음 대면한 사람이었다는 이 순결한 사실도 독자들에게 고백해두자！ 그만큼 나는 우리나라 인맥에서는, 그리고 정치세계로부터 소외된 인간이었다. 나는 요번 인터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20세기의 존경스러운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럿셀(Bertrand Russell, 1872∼1970)경은 그의 대저 ‘서양철학사’의 서문에서 인류의 사상적 흐름을 절제론자(disciplinarian)와 해방론자(libertarian), 양대진영의 호체(互遞)적 흐름으로 파악했다. 절제론자들은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려는데 반하여 해방론자들은 그 결속을 느슨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결국 우리 몸이 긴장과 이완의 리듬으로 유지되듯이 인간사회나 역사, 그리고 문명의 모습도 이러한 긴장과 이완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문명은 미신과 더불어 시작하여 절제를 통한 경직과 전통에 대한 존중이 강화된다. 그러다가 개인주의가 성장하고 협동이 파괴되며 이완의 리듬으로 나아간다. 이때 창조적인 천재들이 많이 배출되지만 사회는 해체의 길로 나아가며 외세의 정복에 무릎꿇거나 무정부의 상태로 악화된다. 그러다가 독재가 출현하면서 새로운 도그마의 문명이 새로운 신테제(a new synthesis)로서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방종과 독재의 시계불알！ 이것은 과연 인간본성에 내재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일까? 럿셀은 비합리적인 도그마나 사회협동을 위한 최소한의 규제이상에 호소하지 않으면서 사회질서(social order)를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자유주의(liberalism)의 본질이며 최대과제상황이라고 대단원의 규정을 내린다.
나는 우리사회의 현금의 최대의 목표는 바로 이러한 자유주의의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노무현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우리사회는 너무 지나치게 방종과 이완과 해체와 무질서한 항거와 원칙없는 자사(自私)주의의 고양(高揚)에 함몰되어가고 있다. 문명의 말기현상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질서(Order)에 대한 동경이 심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쿠데타는 불가능한 사회구조로 이행되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최틀러는 이러한 동경을 비합리적 도그마에 호소함이 없이 합리적 논리 위에서 구현할 수 있는 자유주의자가 될 자격이 있는가? 아마도 최틀러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는 바로 이 한 시각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5·6공 원죄론이 항상 그림자처럼 딸려온다.
―당신이 대표가 되면 한나라당은 5·6공의 군사독재문화로 퇴보하게 되므로 도저히 내년 총선의 상품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기풍을 창출해낼 수 없다는 우려가 있다.
“대답은 간단하다. 나는 5공 때 전국구 국회의원을 3년만 했으며 별 기능이 없는 인간이었다. 단지 마지막 1년간 6·29선언을 위시해서 노태우씨를 대통령 만드는데만 좀 역할을 했다. 그리고 나의 활약은 모두 6공 때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6공은 직선제에 의하여 국민이 선택한 정권이며 우리나라의 급속한 민주화를 관리한 정권이었다. 그것은 우리나라 어느 정권보다도 민주화된 정권이었으며 나는 6공에서 문공부장관과 노동부장관 한 것을 매우 영예롭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서울시장임기는 YS때 이루어진 것이다. 근본적으로 정당성이 없는 공격이다.”
그의 방어는 일단 성공적이다.
―대표출마변은?
“나는 노무현이 정말 잘 할 것으로 믿었다. 우리나라 통치그룹이 중도우파내지 우파에서 중도좌파 내지 좌파로 선회했다면, 그러한 물갈이는 정말 역사에서 한번 있어야할 바람직한 물갈이였다. 우리는 비록 졌지만, 변화에 의한 새로움은 우리사회의 샘물이었다. 그리고 젊음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뭐냐? 100일도 안돼서 이러한 건강한 기대를 좌절시키다니！ 좌절시키는 수준이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 두산중공업, 철도청, 화물연대파업, NEIS시비를 보라！ 도무지 친로(親勞)의 정도가 원칙을 지나쳤다. 우선 사람들의 마음이 닫혔다. 누구든 이 정권하에서 장사못해먹겠다고 외친다. 마음이 닫혔다. 이것이 큰일이다. 남북관계는 어떠한가? 남한은 소외되고 미국과 이북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통제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야당은 어떠한가? 노무현이 흔들리면 그를 이끌어줄 줄도 알아야지 그냥 반대만 하고 있다. 문제는 민생이다. 경제가 더 이상 주저앉지 않도록 여·야가 힘을 합쳐야 할 것 아니냐? 이런 식으로 어떻게 내년 17대총선에 임하겠다는 것인가? 사활이 걸렸는데 환골탈태하는 놈은 없다.”
―그대는 보수가 아닌가? 환골탈태는 어떻게 할려고?
“날 보고 보수라고? 그래 난 보수다. 보수란 스스로를 고쳐나가는 것이 보수다. 변화를 수용못하는 보수는 죽음이다. 보수의 철학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보수의 인간이 개판일 뿐이다. 보수의 원칙이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다. 이것은 언네고시어블 밸류(unnegotiable value: 협상불가능한 가치)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거저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첫째 투명해야하고, 둘째 공정해야하고, 셋째 정의로와야 한다.”
―당은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당개혁도 역시 투명하고 공정하고 정의롭게 해야한다. 첫째, 사람을 바꾸어야 한다. 상향식 공천제는 이미 마련되었다. 그러나 기득권으로 상향의 루트가 블록되지 않고 새 피가 계속 수혈되도록 제도적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 둘째, 우리정당은 아날로그적 관료주의를 버리고 디지털화되어야 한다. 나는 71년도 이미 미국유학가기 전에(USC에서 신문학 석사) 한국에서는 드물게 컴퓨터프로그래머 자격을 얻었다. 디지털정당이란 곧 전당원을 상대로 쌍방향 직접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이버공간에서 지지자를 확대하는 좀 뼨시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는 것이다. 셋째, 정쟁(政爭)정치에서 정책(政策)정치로 당의 성격을 근본변화시켜야 한다. 정치인은 교도소담장 위를 걸어 다니는 놈들이다. 재수없으면 담안으로 떨어지고 재수있으면 담밖으로 떨어진다. 한마디로 썩었다. 그리고 거짓말한다. 그리고 싸움만 한다. 몇몇 보좌관 가지고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가? 당내에 박사급 100명 이상의 전문 스타디 그룹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국민의 생활에 직결되는 정부정책을 엄밀하게 검증하고 또 새로운 잇슈를 개발해야 한다.”
―경제는 어떻게 살리나?
“재벌이 활발하게 의사결정하고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내부자거래와 분식회계는 용납해서는 안된다. 포괄적 과세도 불가피하다. 노조대표를 재벌회사 이사회에 참석시켜 감사케 해야한다.”
―노조는?
“노동현장은 국영기업·대기업·공기업·화이트칼라전문노조의 세계와 중소기업·소기업의 세계가 전혀 다르다. 한국근로자의 80%가 중소기업에 속해있는데 그들은 파업이나 노조교섭력이 없다. 자동차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대기업의 조립회사와 1·2·3차 벤더는 피라밋식으로 구축되어 있다. 대기업과 3차벤더의 임금차이는 토요타의 경우 100:85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00:25다. 그러니까 대기업 노동자는 대다수의 노동자를 착취해먹는 노동자다. 이들의 불법파업은 가차없이 막아야 한다. 노동부장관은 노편도 아니요 사편도 아니다. 오로지 국민편이다. 목숨 내걸고 싸워야 한다. 사람은 누울 자리보고 다리뻗게 마련이다. 왜 파업을 사전에 봉쇄하지 못하는가? 국민이 우리편인데? 확고한 원칙이 있으면 결국 희생자를 줄인다. 우리는 대의(大義)를 위해 살아야 한다. 노동유연성(정리해고제)을 보장하고 사회안정망을 구축해야 한다.”
―새만금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태가 매우 복잡하다. 그 문제는 일단 공사를 중지시키고 대통령직속위원회에서 새롭게 종합검토해야 한다.”
―NEIS는 어떻게?
“그것은 전교조의 주장과 무관하게 밀어부쳐야 한다.”
―그것은 틀렸다. 당신의 판단은 정보가 미비한 데서 오는 오판이다. NEIS와 전교조는 관계없는 일이다. 당신 아들딸의 성장과정의 세세한 신상정보가 과연 국가에 의해 중앙통제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 사람이 학교를 안 다니는 사람이 없는데 그렇다면 전국민의 성장과정의 전체정보가 국가기관의 키보드 하나 속에 다 들어가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나는 그에게 NEIS에 관한 세세한 논의를 계속했다. 그는 순간 깨우쳤다고 했다. 그리고 NEIS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신념의 확고한 수정의사를 밝혔다. 그는 논리적이었다.
“보수는 진보의 잇슈를 선취해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패망한다”는 나의 말에 그는 다음과 같이 외쳤다.
“맞는 말이다. 나와 같이 동업하자！”
글쎄올시다. 도올이 과연 그와 동업할 수 있을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