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03-10-08 (문화) 인터뷰 16면 05판 1746자    
  
    
대형 라이센스 뮤지컬의 홍수 속에서 오랜만에 창작뮤지컬이 관객과 비평 양측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으며 선전하고 있다. 서울 정동 팝콘하우스에서 공연중(23일까지)인 뮤지컬 ‘페퍼민트’가 화제의 무대. 유령과 사랑에 빠지는 톱가수 이야기라는 독특한 줄거리에다 바다 김영주 등 주·조연들의 호연,창의적인 무대 등으로 기존 창작뮤지컬에 비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페퍼민트’를 다른 뮤지컬과 차별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음악이다. 80년대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풍선’ 등으로 가요계를 풍미한 그룹 ‘다섯손가락’의 멤버 겸 작곡·작사가,그리고 90년대 김건모와 조규찬의 앨범 편곡·프로듀서였던 이두헌(39)이 만든 음악은 랩 R&B 로큰롤 테크노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번이 첫 뮤지컬 작곡인 이씨는 당초 작가겸 프로듀서인 이유리씨의 권유로 가요편집 뮤지컬을 표방한 ‘페퍼민트’의 선·편곡만 맡기로 했다. 그러다 창작곡도 일부 넣기로 한 것이 지난 3월 워크숍에서 그가 선보인 곡들의 반응이 좋자 제작사측에서 ‘페퍼민트’를 완전히 창작뮤지컬로 만들기로 결정한 것.
“제가 뮤지컬 음악을 작곡하게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그러나 작가가 써온 가사에 멜로디만 붙이는건 하고 싶지 않았어요. 예전에 다섯 손가락 때도 그렇고 지금도 작곡과 작사를 같이 해요.”
‘사랑을 믿나요’ ‘나무가 될거야’ ‘푸른 숲 같은 사랑’ ‘사랑이 사람 뒤에 서 있네’ 등 작품 속 모든 노래들의 작사·작곡·편곡이 그의 작품이다. 한번 들으면 따라듣기 쉬운 멜로디도 좋지만 서정적인 가사가 매력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때문에 극장에서 한정판매되는 O.S.T가 매 공연 때마다 70∼80장이나 팔리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사실 이씨처럼 가사와 멜로디를 동시에 해내는 뮤지컬 음악가는 세계적으로도 극소수. 대부분 작사가와 공동작업을 통해 작품을 내놓는다.
“가요도 그렇지만 뮤지컬은 특히나 가사와 멜로디가 유기적이어야 되는데 우리 창작뮤지컬을 보면 너무 따로 놀더군요. ‘페퍼민트’는 작가에게 시놉시스를 받고 계속 상의를 하면서 가사와 멜로디를 썼어요.”
지난 8월 ‘페퍼민트’의 제작발표회에서 “한국 뮤지컬은 정말 재미없고 배울게 없었다”며 자신감을 넘어 오만함까지 보여준 그답게 인터뷰 내내 국내 창작뮤지컬에 대한 호된 비판을 쏟아냈다. “국내 창작뮤지컬을 보면 음악이 굉장히 단조롭습니다. 천편일률적인 음계도 그렇고. 작곡가가 소화할 수 있는 장르가 적은거죠.”
12살때부터 기타를 시작한 그는 보스턴의 버클리 음대와 남가주대학(USC)에서 재즈와 오케스트라로 수석 졸업했을 만큼 클래식와 대중음악을 두루 섭렵했다. “제가 잘난척을 좀 했는데,사실 미국에서 7년간 공부하면서 음악은 이론이 아니라 내 안의 소리를 밖으로 꺼내는 작업이란걸 깨달은 것입니다.”
이번 작업을 계기로 그는 자신 안에 담긴 다양한 소리를 꺼낼 수 있는 창작 뮤지컬을 더 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돌이켜보면 제 음악의 뿌리는 뮤지컬이에요. 어렸을 때 ‘주말의 명화’에서 본 ‘지붕 위의 바이올린’ ‘비바 라스베이거스’ ‘화이트 크리스마스’ 등 뮤지컬 영화에 미쳐서 음악을 하게 됐거든요. 그때 제가 받았던 감동을 다시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싶어요.”
이번 공연 이후 그는 내년에 ‘페퍼민트’ 재공연을 위해 음악을 좀더 손질하는 한편 이유리씨와 함께 새로운 창작뮤지컬 ‘이혼이야기’의 음악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뮤지컬 음악가로서 산뜻한 출발을 보인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장지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