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24    2004.07.02 16:19

"벨소리 사업은 이미 한국, 동남아 등에서 검증된 사업 모델입니다. 미국에서도 충분한 사업성이 있다고 자신합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휴대폰 벨소리 전문업체 엠투고(www.mtogo.com)를 이끌고 있는 이지선 사장. 그를 볼 때면 '흐르는 강물처럼'이란 영화 제목이 생각난다. 요란스럽진 않지만, 목표를 향해 쉼 없이 전진하는 물줄기같은 느낌이 든다.

지난 1996년 국내 최초의 IT전문 홍보대행사인 드림커뮤니케이션을 세운 이지선 사장은 2년전인 2002년 드림의 CEO 자리를 물러났다. 6년 여 동안 애지중지 키워온 드림을 남에게 넘기고 홀연히 미국 유학을 떠났던 것.

그런 그가 또 다시 사업 일선으로 뛰어들었다. 올해 남가주대학(USC) MBA 과정을 졸업한 이 사장은 휴대폰 벨소리 전문업체인 엠투고를 통해 또 한번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지선 사장과는 지난 6월30일 오후(미국 시간으로는 6월29일 밤 11시경)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수단은 메신저. 1시간 30분 가량 메신저 인터뷰를 하면서 '때론 글이 말보다 더 진솔할 수도 있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 얼굴을 맞대지 않기 때문에 더 솔직해 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인터뷰하는 동안 그녀는 조금 들떠 있었다. 그건 매일 매일 가입자가 폭증해서도 아니었다. 8시간 후면 사랑하는 왕자를 만난다는 설레임이 인터넷 먼 공간을 통해서도 그대로 전해졌다. 2년 여간 미국 땅에서 혼자 생활하던 이 사장은 그 다음날 가족들과 재회할 예정이었다.)

◆ "미국서도 벨소리 사업성 충분"

엠투고는 이제 설립된 지 두 달여된 신생 벤처기업이다. 말 설고 낯 설은 미국 땅에서 모바일 벤처를 시작한 지 불과 두 달여. 하지만 이사장은 '길이 보인다'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사용자가 꾸준히 늘고 있을 뿐 아니라 방문자 재방문률도 높다"면서 "현재 가입자당 평균 매출이 연간 5달러 정도인데 이건 대단한 수준이다"고 강조했다. 서비스 두 달 만에 당초 예측의 6배를 달성했다는 설명이다.

벨소리 사업은 한국에선 이미 황금알 낳는 거위로 통하는 영역이다. 다날, 모빌리언스 같은 업체들이 탄탄한 입지를 굳히고 있을 정도로 잘 나가는 분야다. 웬만한 사람들은 벨소리 한 두개 쯤은 다운받을 정도로 인기 품목이다.

하지만 미국 시장과 벨소리 사업은 웬지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아바타가 외국에선 그다지 성공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차원이다. 이 땅에서 벨소리나 아바타 사업이 성행하는 것은 한국인 특유의 '새것 컴플렉스'와 무관하지 않다고나 할까?

이지선 사장은 이 대목에 대해선 단호한 목소리로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좋은 걸 보면 쓰고 싶어하는 것은 어디나 똑같다"는 것. 이 사장은 특히 "모바일 시장은 가장 유망한 성장 분야 중 하나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 동안 미국에서 벨소리 사업이 뜨지 않았던 것은 휴대폰 보급률이 좀 뒤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보급률을 대략 50~60% 정도로 보거든요."

잠시 계산기를 두드려보자. 미국 시장의 휴대폰 보급률이 50%라고 해도 대수로는 1억5천만대 정도에 달한다. 반면 한국은 100% 보급률이라고 해봐야 4천만, 5천만 대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과 미국 시장 사이엔 '규모의 경제' 면에서 그만큼 큰 차이가 난다. 미국 시장은 모바일 사업 기반만 놓고 보면 수평 비교가 힘들 정도로 기회가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사장은 날로 발전하는 미국 이동통신 시장의 틈새를 공략하는 데 한국형 히트상품인 '벨소리'만한 것이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올들어 미국 시장에서 카메라 폰 보급이 확산되고 있는 것 역시 '좋은 징조'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용자가 축적되면 배경화면 다운로드, 동호회 등을 강화해 미국 시장에서 본격적인 모바일 포털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 후회 없애기 위해 유학 선택

여기서 잠시 2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보자. 당시 이지선 사장은 꽤 잘 나가는 홍보대행사 대표였다. 나름대로 애환이야 적지 않았을 테지만, 직원 40여 명을 거느린 남부러울 것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날, 문득, 드림 CEO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곤 적지 않은 나이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본인이야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일테지만, 보는 입장에선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꼭 잘한 결정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변화는 뭔가 코스트(비용)를 지불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2002년이면 전국민이 '오~ 필승 코리아' 열풍에 휩싸여 있을 무렵. 하지만 그는 월드컵의 열기를 뒤로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당시의 선택에 대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기보다는 인문학적인 결정'이란 말로 설명했다.

"인생에 후회를 없애기 위해서였어요. 내가 만약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누르고 드림에 있었다면, 중간중간 내내 후회했을 거에요. '내가 그 때 공부하러 갈걸'하는 후회를 평생 안고 사느니 후회나 없애자, 는 생각을 하게 된거죠."

이 얘기를 들으면서 문득,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떠올리게 됐다. 그 시에 보면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의 마음을, 시인은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사장은 또 MBA 과정을 통해 굉장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갖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MBA 공부를 통해 '자신감'을 배울 수 있었다. 이를테면 '내가 지금 뭔가 놓치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됐다고 그는 털어놨다. 기업 전략을 점검하는 다양한 툴들을 배운 것은 기업 현장에서도 상당한 도움이 됐던 것.

"사실, 요즘, 내가 옛날 드림할 때에 비하면, 자신감과 여유를 갖고 일하는 것 같아요. 비록 잘 안될지라도 잘 될거라는 위안도 스스로 할 줄 알고…."

이 정도면 2년간 포기해야 했던 '기회 비용'을 웬만큼 만회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는 MBA 과정을 선택함으로써 상당한 손실 비용을 지불했지만, '자신감'이라는 또 다른 선물을 받을 수 있었던 셈이다.

◆ MBA 공부하면서 아웃라이어란 생각 많이해

그렇다고 해서 MBA 과정이 마냥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처음 6개월 가량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말도 서툰데다 늦게 재개한 공부에 몰입하는 재미도 괜찮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익숙해지니까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는 진리를 다시 느끼게 됐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하게된 계기를 그는 통계용어로 설명했다.

"태어나서 난생 처음 통계를 배웠습니다.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상당히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런데 통계 용어 중 아웃라이어(outlier)라는 기억에 남아요. 아웃라이어란 평균값에서 많이 벗어난 데이터를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통계에서는 아웃라이어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전체 평균이나 상관관계 분석에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이죠."

그는 MBA 과정에 몸담고 있으면서 자신이 아웃라이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등록하고 보니 클래스에서 자신이 최고령(?)이었던 것. MBA 과정에서 중요하게 취급하는 프리젠테이션 연습같은 것들도 큰 흥미를 끌기 못했다.

고객사 프리젠테이션으로 40여 명을 먹여 살린 경험을 갖고 있는 그에게, 클래스에서 하는 프리젠테이션 연습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MBA 지망생들의 주된 이유 중 하나인 '네트워크 확대'라는 것도 그에겐 그리 절실한 문제는 아니었다. 기자 생활과 사업을 통해 나름대로 닦은 인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100% 긴장시키지 못한 채 학교를 다니게 됐다. 가끔씩은 "완전한 충전을 위해서 방전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신을 '아웃라이어'라고 생각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 모바일은 '인터넷시대의 청바지 사업'

진로를 고민하던 그는 대기업 쪽으로 눈을 돌려보기로 했다. 뭔가 큰 시야를 가지고 배운 것을 적용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 때 그의 눈에 띈 것이 바로 삼성이었다. 삼성은 한국에서 일할 사람들을 뽑기 위해 미국으로 인재사냥 투어를 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삼성 면접을 봤는 데, 결론적으로 떨어졌어요. 면접하는 사람은 상당히 관심을 가졌지만, 서로 생각하는 게 달랐던 거죠."

그가 염두에 둔 직급과 삼성쪽이 제시한 직급이 서로 맞지 않았던 것. 떨어졌다기 보다는, 조건이 맞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할 듯 했다.

그 뒤로는 '역시 내가 승부를 걸 곳은 사업이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 이 때 그는 "인터넷 시대의 청바지 장사를 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여기서 잠시 부연 설명을 덧붙이자. 미국의 골드러시 시대에 실제로 금광을 발견해서 벼락 부자가 된 사람은 드물었다. 아니, 거의 없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하지만 금광을 캐러 가기 위해 너도 나도 청바지를 사 입으면서, 청바지 장사들은 골드러시 시대 최고의 부자로 떠올랐다.

이 때 거의 눈에 띈 것이 바로 모바일 사업이었다. 인터넷 시대의 청바지 사업은 바로 '모바일'이란 확신을 갖게 됐던 것.

"한국과 미국을 잇는 사업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또 서울 및 아시아에서 성공 사례가 있다는 점도 믿음을 주었어요. 아, 내가 해보면 재미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마음 정하는 것이 힘들었지, 일단 결심을 하고 난 뒤에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는 스스로를 '단순 무식형'이라고 말한다. 좀 단순 무식한 표현을 그럴듯하게 바꾸자면, '저독적으로 밀어붙이는 형' 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인생을 살아갈수록 느끼는 건데, 뭔가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미국에 공부하러 온 결정도, 여기 남아서 사업을 벌이기로 한 결정도. 내 안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해야할까."

◆ "엠투고는 잘 가꾸어서 결실내고 싶다"

이쯤에서 좀 더 인문학적인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이를테면, "이 사장 인생에서 사업이란 게 뭐에요?"하는 질문 같은 것들이다.

"그냥 내가 해야할 일 같은 거죠. 내 인생의 45%의 시간과 의미와… 기타 등등을 차지하지요. 사실 그 이상일지도 몰라요."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첫 사업체였던 드림은 제겐 '첫사랑' 같은 존재에요." 온 몸과 마음을 쏟았고, 거의 죽을 것처럼 일했는데, 결국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을 그는 갖고 있다.

"엠투고는 잘 가꾸어서 결실을 보았으면 해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이 회사에서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 손으로 얻고 싶은 거죠."

이 사장의 '첫 사랑'론'을 듣는 순간, 괜히 숙연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 첫사랑이란 헤어질 때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질 않던가. 그리곤 다들 얘기한다. '만남과 이별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지만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그런 얘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숱한 불면의 밤이 필요하다는 것을. '첫사랑의 열병'을 혹독하게 앓고 나면 한단계 성숙한다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장기적인 비전은 어떤 것인지를 물어봤다. 그랬더니, 좀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좀 나이들면 야학같은 거,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조금, 형편이 안 좋은 아이들. 배우는 것을 인생의 희망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음 좋겠어요. 매일매일 커가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 자신도 힘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얘기를 할 때쯤엔 벌써 인터뷰를 시작한 지 1시간 30분 가량이 지나고 있었다. 메신저 인터뷰라는 게 의외로 알찬 점이 있었다. 한 시간 30분 동안 쉴 새 없이 자판을 두드려대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미국 땅에서 새롭게 벨소리 사업을 시작한 이지선 사장. 그는 이제 막 스타트라인을 출발했다. 그가 성공적인 레이스를 펼칠 지, 아니면 중도 하차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묘한 확신'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