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2004.08.23 12:06

한국영화 전성기다. 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 흐름을 주도해온 주역 중 하나가 한국영화아카데미다. 한국영화아카데미는 그 동안 `청풍명월` 의 김의석, `영원한 제국` 의 박종원, `누구나 비밀은 있다` 의 장현수 감독 등 1기생을 기점으로 지난해 최고 흥행성적을 올린 `살인의 추억` 의 봉준호, `지구를 지켜라` 의 장준환(이상 11기) 등 영화감독과 촬영감독, 프로듀서, 평론가를 다수 배출했다. 84년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 부설 교육기관으로 개원돼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오는 9월 말 현재 남산동 교사에서 마포구 서교동의 새 교사로 이전한 뒤 새로운 20년을 준비한다.

영화 르네상스 일군 엘리트 산실

연출ㆍ촬영등 아카데미군단 형성


◆ `상업적 작가주의` 의 산실

영화아카데미 출신의 색깔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 감독이 작가주의와 상업주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며, `웰메이드 영화` 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성과 흥행성의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고 이른바 `상업적 작가주의` 시대를 열어놓은 셈이다.

특히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연 지난해에는 영화아카데미 출신 영화감독들의 활약이 절정에 이르렀으며 이런 경향들이 뚜렷이 나타났다. 아카데미 출신 감독들이 만든 `살인의 추억` 을 비롯해 `바람난 가족` `스캔들` `품행제로` `4인용 식탁` 등은 평단의 호평을 이끈 문제작이자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흥행작이 됐다. 올해 데뷔한 임찬상 감독의 `효자동 이발사` 도 작가의식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흥행 코드를 잃지 않은 영화로 평가받았다.

이들 영화감독은 직접 시나리오를 쓴다. 작가적 역량과 의식의 바탕 위에 상업영화 제작사와 작업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한국영화아카데미의 교육이다.

◆현장중심 교육

`영화아카데미의 힘` 은 무엇보다 `현장 지향성` 과 `실무중심 교육` 에 있다. 박기용 영화아카데미 원장은 "상업영화를 만들든, 포르노를 만들든, 실험ㆍ예술영화를 만들든 현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인력을 배출하는 게 아카데미의 목표"라고 말했다. 아카데미의 지원생들은 목적의식이 강하고 목표와 계획이 구체적이다. 그래서 재학생들은 현장 경험자나 영상관련업 종사자, 타 교육기관 출신이 다수이고 졸업 후에는 90% 이상이 현장으로 투입된다. 커리큘럼이 철저히 실습 중심이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영화진흥위원회의 각종 촬영장비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한 해 모집 정원은 연출 12명, 촬영 6명, 애니메이션 12명이다. 수강기간은 1년에서 1년6개월로 늘었다가 현재의 2년 4학기제로 정착됐다. 연출과정을 기준으로 이론교육 외에 학기별로 디지털비디오(DV)워크숍-2차 16㎜ 실습-35㎜ 실습-졸업워크숍 등의 실무교육을 받는다. 연출과정 수강생 1인당 4학기 동안 5~30분 길이의 작품을 총 6편 정도 연출한다. 여기에 조명, 음향, 음악 등 스태프로 참여하는 작품까지 합하면 1인당 20여편이 넘는 영화 제작과정을 경험한다.


2년간 20여편 실습 실력파 양성

내달 신촌 이전…프로덕션화 추진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역사

한국영화아카데미는 미국의 영화시장 개방 압력에 따른 대책으로 제5공화국 정부가 마련한 영화진흥 5개년 계획의 하나로 영화진흥공사(영화진흥위원회 전신) 부설기관으로 설립됐다. 당시 영화진흥공사 남산 사옥의 강의실 하나를 빌려 출발한 한국영화아카데미는 개원 이듬해인 1985년 1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초창기 졸업생들은 현장인력과의 갈등도 있었지만, 도제시스템이 지배하던 충무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충무로에 발이 넓지 못하던 장선우, 박광수 등 신진작가들이 제도권 내로 들어오면서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생들은 이들의 연출부 인력 자원이 됐다.

10대1~2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입학하는 학생들은 출신별로 보면 대학 영화과 졸업생 30%, 현장 출신 30%, 사설교육기관 및 독립영화 출신 30%, 독학 10% 정도로 구성돼 있다.

한국아카데미의 20년 역사 속에서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됐던 것이 `기구의 독립` 과 `예산, 조직의 확장` 이다. 첫해 9000만원의 예산에서 현재 13억원(2004년 기준)으로 확장했지만, 역할에 비해 예산과 조직규모는 여전히 빈약하다. 특히 첫해 570여만원이었던 수강생 1인당 교육비가 현재에도 580여만원 수준으로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또 현재 교직원은 원장과 전임교수 3명, 겸임교수 1명으로 총 5명에 불과하다.

◆장편,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미래의 키워드

한국영화아카데미는 2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9월 말 이전 계획이 잡힌 신촌의 새 교사는 첫 한국영화아카데미 소유의 건물로 지상 5층 지하 1층, 연건평 650평 규모. 여기에는 개원 후 처음으로 60여평의 스튜디오와 50석의 시사실, 도서관 등이 들어선다. 이와 함께 내년에는 연출, 촬영, 애니메이션 과정 외에 영화 프로듀서 양성 과정도 새로 개설된다.

향후 발전과제는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된다. 내년에 개원 후 처음으로 35㎜ 장편영화를 제작하는 것으로 시작해 장편영화 중심의 교육이 강화되고, 전공과정의 전문화와 심화교육을 위한 방안도 마련된다. 여기에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단순 교육기관에서 벗어나 제작소(프로덕션)화 하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박기용 원장 인터뷰] "학제 교육-제작 과정으로 이원화"


박기용(44)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은 `모텔 선인장 `낙타(들)` 로 국내외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 3기생으로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전성시대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초창기부터 주목받은 이유는?

-개원 무렵에는 일부 대학을 빼고는 영화 관련 학과도 거의 없었고, 실습장비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실제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실무능력을 겸비한 인력의 배출은 당시 영화인들로부터도 환영을 받았다.

▲새로이 모색하는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아카데미의 실습교육은 여전히 단편영화 중심이다. 이제 졸업작품으로 장편영화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제작소로서의 기능도 확장돼야 한다. 이를 위해 1년간 교육중심, 1년간 제작연구과정 등 학제의 이원화도 검토하고 있다.

▲영화감독 지망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조언한다면.

-영화에서 학벌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많이 보고, 많이 만들어 보는 것이다. 요새는 디지털 캠코더와 편집 소프트웨어로 누구나 쉽게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여기에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면 된다. 사실 영화 촬영의 테크닉은 몇 주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m.com)



[영화감독 되는길]


▲국내 영화교육기관

학위를 수여하는 정규 교육기관으로는 현재 60여개 대학에 영화 관련학과가 설치돼 있고, 이를 포함해 120여개의 대학이 영화ㆍ영상관련 과정을 개설해 놓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도 꾸준히 영화 인력을 배출해 왔다.

▲해외교육기관

미국의 아메리칸필름인스티튜트(AFI)는 한국영화아카데미의 모델이 된 학교로 지난 1967년 설립돼 할리우드의 인력을 공급하는 통로로 명망이 높지만 한 학기당 학비가 3만달러 이상이다. 하길종 감독을 필두로 홍상수(캘리포니아 예술대학), 곽경택(뉴욕대), 이광모(UCLA), 육상효(USC) 등이 미국 유학파다. 프랑스 유학파로는 변혁(FEMIS), 임순례(파리 8대학) 등이 있다.

▲시나리오작가, 독립ㆍ단편영화제 출신

시나리오 작가에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는 경우도 많다. `태극기 휘날리며` 의 강제규 감독을 비롯해 `바람의 전설` 의 박정우, `알포인트` 의 공수창 등이 대표적인 예다.

독립영화제나 단편영화제 등도 제도권 입문의 통로 중 하나. 변영주 민병천 이정국 양윤호 감독 등은 독립영화 출신. `S다이어리` 의 권종관, `남극일기` 의 임필성 감독 등은 단편영화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장편 데뷔작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