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9.21 (화) 14:20  

▲지난 주 열린 NCAA 미식축구의 대표적 라이벌전 테네시대-플로리다대의 경기장면.(아래사진) 경기 종료 6초 전 50야드롱킥을 성공시킨 테네시대가 역전승을 거둬 라이벌전의 진수를 보였다.

미국 대륙이 또 한 번 광란에 휩싸인다. 전미대학체육협회(NCAA) 농구 64강 토너먼트가 시작되는 '3월의 광란'이 북아메리카 대륙의 봄을 한 차례 휩쓸고 간 뒤, 가을의 초입에 찾아오는 NCAA 미식축구 시즌은 또 한 번미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경기가 열리는 주말이면 TV 앞으로만 모여든 탓에 한동안 유령도시로 변한 도시들이 여기 저기서 나오는 게이쯤의 미국 모습이다. 집집마다, 자동차마다 내걸린 주립대 깃발, 콘퍼런스 라이벌전이라도 열릴 참이면 그 기세는 정말 대단하다. 프로 스포츠보다 지역 연고가 더욱 확실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지역주민들의 성원을 받는NCAA 미식축구의 인기는 그야 말로 미국의 가을과 겨울의 추위를 녹이는 광란이다.


1997년 봄 어느 날.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시에 때아닌 함성이 메아리쳤다. 졸업을 앞둔 테네시대학교의 쿼터백 페이튼 매닝(28.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이 이 학교에 1년 잔류를 '선언'한 것이었다. 당시 전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드래프트 1번으로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지명을 받은 매닝의 1년 잔류는 테네시뿐 아니라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매닝을 1년 더 학교에 붙들어맨 것은 NCAA 특유의 정서인 라이벌 정신 때문이었다. 당시 NCAA 넘버원 쿼터백으로 테네시대를 전미 랭킹 1위로 올려 놓은 매닝이었지만 4년간 한 번도 같은 콘퍼런스 소속의 플로리다대학교를 이겨본 적이 없었다. '타도 플로리다', 매닝뿐 아니라 테네시 사람들의 숙원이었다.

미국 동남부에 애팔래치아 산맥 끝자리에 자리잡은 테네시는 상대적으로 한적한 고장. 그래서 그런지 당시 프로스포츠의 혜택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현재 테네시 타이탄스인 NFL의 오일러스가 97년 테네시로 연고지 이동, 현재는 NBA, NHL팀도 있다). 그래서 테네시 사람들이 테네시대와 매닝에 거는 기대는 간절했다. 때문에 매닝의 잔류선언이 있자, 테네시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교장이 정규수업에 중단한 채 이 뉴스를 교내방송을 통해 전한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그리고 맞이한 1997년 NCAA 시즌. 전미 랭킹 1위답게 승승장구하던 테네시대학교는 또 한 번 플로리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긋지긋한 징크스, 하지만 대어를 잡은 플로리다도 그저 그런 대학에 덜미를 잡혀 콘퍼런스 우승을 테네시대학교로 넘겨주고 말았다. NCAA 라이벌전의 진수었다. 플로리다대가 패하는 날 테네시주는 테네시대학이 이긴 날보다 더한 잔치판이 벌어졌다. 어쨌든 1년을 더 투자한 매닝은 결국 한을 풀지 못한 채 쓸쓸히 NFL로 향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열린 테네시-플로리다 전. 4쿼터 종료 6초전까지 뒤지던 테네시대가 50야드 롱킥을 성공시켜 극적인 역전승을 따냈다. 미국에서 유명한 미식축구선수 집안 출신으로 NCAA에 이어 NFL에서도 최고의 선수(2003년 MVP)로 등극한 매닝이지만 이 장면을 보고 감격했으리라.

이처럼 NCAA 미식축구의 진수는 라이벌전이다. 아이비리그 콘퍼런스의 하버드대와 예일대, 빅10 콘퍼런스의 미시간대와 미시간주립대, PAC10(태평양연안 콘퍼런스)의 UCLA와 USC, 콘퍼런스 간의 경기로 열리는 육.해.공군 사관학교 끼리의 경기 등은 전국구 라이벌전이로 손꼽힌다.

라이벌전은 메이저 대학의 전유물은 아니다. NCAA의 2부, 3부리그 소속 대학들도 치열한 지역 라이벌전을 치른다. 이 날은 지역사회의 잔칫날이기도 하다. 마치 유럽에서 지역사회의 행사로 자리잡은 2부, 3부리그의 축구경기를 보는 듯하다.

장치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