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6 (수) 17:43  

인터넷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 발달로
인간사회는 네트워크 중심으로 재편돼
정치·경제·사회적인 ‘인터넷 갤럭시’형성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
마누엘 카스텔 교수 이메일 인터뷰
국내에도 ‘네트워크사회의 도래’ ‘인터넷 갤럭시’ ‘정보도시’ 등의 저서를 통해 널리 알려진 ‘정보화 사회의 대이론가’ 마누엘 카스텔(Manuel Castells·62) 미국 남가주대(USC) 안넨베르그 커뮤니케이션학교 석좌교수는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인터넷에 이어 무선이동통신기술이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를 탐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카스텔 교수는 새로운 기술은 권력층보다는 일반인들의 권익을 표출하고 지키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도 번역된 책 ‘네트워크사회의 도래’(한울)를 보면 니콜라스 풀란차스, 알랭 투렌, 다니엘 벨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창안한 ‘인터넷 갤럭시(은하계)’라는 용어는 미디어연구가 마셜 맥루언이 말한 ‘구텐베르크 갤럭시(은하계)’에서 따온 것입니다. 맥루언의 영향도 컸으리라고 봅니다.
“솔직히 말하면 맥루언의 영향은 받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도 그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는 위대한 사상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저처럼 경험적인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벨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가 출현할 것으로 보았습니다만, 후기산업사회를 미국으로 한정시켰다는 점에서 자국중심주의에 빠져 있었고 현재 형성 중인 것과 같은 다양성을 가진 새로운 사회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풀란차스는 최후의 훌륭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였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상가는 알랭 투렌입니다. 그 분은 언제나 사회를 기술이나 경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분석합니다. 제가 투렌으로부터 배운 것은 바로 이 교훈입니다.”
―교수께서 말하는 ‘네트워크’는 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같습니다. 그것을 일상적인 의미의 ‘네트워크’와 구별해서 알기 쉽게 설명해줄 수 있겠습니까?
“글쎄요,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네트워크란 상호연결된 결절점(node)들의 집합입니다. 그것은 형식적인 구조이고 그런 점에서 수학적 개념이지요. 내가 그 개념과 관련해 기여한 부분은 그것을 새롭게 정의한 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사회가 지역적·국가적·전 지구적 차원에서 네트워크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과, 이런 강력하고 유연한 형태의 사회구조가 컴퓨터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전자적이고 상호작용하는 커뮤니케이션기술들에 의해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증명한 데 있다고 봅니다.”
―인터넷이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는 데는 이론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인터넷이 어떤 식으로 발전하고 그것이 또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이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습니까?
“저는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미래학자가 아니라 조사연구자입니다. 나는 내가 관찰하는 것을 분석할 뿐입니다. 미래예측이라는 것들은 대부분 근거가 없고 또 잘못된 것들입니다.”
―‘인터넷 갤럭시’란 어떤 의미에서 사용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무선 인터넷을 포함해서 인터넷에 기반을 두고 또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형성되는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말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이제 기술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경제적이며 정치적이기까지 합니다. 이 모든 커뮤니케이션에 바탕을 둔 과정들이 합쳐져 내가 ‘인터넷 갤럭시’라고 부른 사회체계를 구성합니다. 물론 앞서 말씀하신대로 그 용어는 인쇄술에 바탕을 둔, 맥루언이 말한 ‘구텐베르크 갤럭시’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방대한 자료와 총체적인 이론적 시각 때문인지 당신을 21세기의 마르크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평가에 대해서 동의하십니까?
“그것은 명백한 과장일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철학자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회과학 연구자입니다. 어떤 분석을 하더라도 늘 경험적 사실과 관찰에 바탕을 두지요.”
―이런 질문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전반적으로 봐서 당신의 이론적 입장은 보수적이라고 봐야 합니까, 진보적이라고 봐야합니까?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을 건드리는 질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사회과학자이고 연구자이지 정치인이 아닙니다. 과학에는 옳고 그른 것은 있지만 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지요. 물론 저도 개인적으로는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일이 권력층보다는 일반 사람들에게 더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사회를 가능한 한 엄정하게 이해하는 일입니다. 그게 제 직업입니다. 전 정치인이 아니니까요. 저도 세계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갖는 시민이긴 하지만 그것은 저의 개인일이고 저의 연구주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한국에서의 인터넷 발달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그리고 한국이 극복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분명 한국은 가장 폭넓게 인터넷 접근이 가능한 환경을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국민들의 높은 교육수준과 더불어 이는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잠재적으로 생산성이 풍부한 사회로 만들어 주는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한국의 문제는 건강 교육 행정 시민참여 등과 같은 공공서비스가 이런 광대역 인터넷의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아마도 관료주의 때문이 아닐까요. 이런 분야의 인터넷 활용이 본격화돼야 시민들도 공공의 관심사에 보다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곧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기술만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데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늘 새로운 주제를 잡아서 연구영역을 넓히고 계신데 최근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혹시 지금도 새로운 책을 쓰거나 준비하고 있다면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소개해주십시오.
“마침 얼마 전에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무선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활용되고 있는가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끝냈습니다. 거기에는 한국에 관한 부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가장 흥미로운 점을 꼽자면 무선이동통신기술은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제받고 있는 지역의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쉽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방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마뉴엘 카스텔 교수는
미디어 및 커뮤니케이션 이론 분야의 독보적 학자인 그는 최근 완성한 ‘네트워크사회의 도래’ ‘정체성의 힘’ ‘밀레니엄의 종언’ 3부작을 통해 근대사회를 지탱했던 정치·경제·문화의 원리가 총체적으로 붕괴하고 인터넷에 기반을 둔 네트워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1942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1967년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25세의 나이에 파리대학 교수로 임용됐다. 그후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 스페인 마드리드대, 미국 버클리대 사회학과 교수를 역임하며 20여권의 저서와 15권의 편저, 1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하며 미디어사회의 본질을 꿰뚫어 왔다. ‘네트워크사회의 도래’에 대해 앤서니 기든스는 막스 베버의 대작 ‘경제와 사회’에 비견하는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했고 피터 홀은 ‘우리 시대의 자본론’이라고 불렀다. 그가 ‘21세기의 마르크스’로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한우기자 hwle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