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03-03-12 (문화) 기획.연재 33면 07판 1590자

*‘아메리칸 드림’보장된 美정부 통역 접고 귀국
1970년 첫번째 유학길에서 돌아와 불우 청소년의 마을인 광주보이스타운 설립자로,그리고 원장으로 특수목회를 시작했다. 광주지역 교계와 사회지도자들,전국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광주 소년원에서 출감하는 무의탁 청소년들을 돕는 일이었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느낀 게 있었다. “광주에서 사회선교 사역을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보다 심층적인 사회사업 공부를 해야 한다.” 또다시 학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남가주대학(USC)에서 사회사업 박사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72년 8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70년초 로스앤젤레스 한인사회는 미국 이민법의 자율화로 인해 이민자 수가 급증하면서 한인사회에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었다. 나는 공부하면서 로스앤젤레스 지역 한인교회,교민사회 지도자,뜻있는 유학생들과 함께 교민사회를 돕는 일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한인노인회 봉사,한인 10대를 위한 야간 전화상담,한인학생회 봉사를 비롯해 미국 교회에서 간증 설교 등을 하며 계속 특수선교에 임했다.
박사과정이 거의 끝날 무렵 나에게는 두 가지의 큰 유혹이 다가왔다. 학위를 받는 대로 보이스타운으로 돌아가 무의탁 청소년 사역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소명의식은 분명히 갖고 있었지만 솔직히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정말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 그 고통스러운 보이스타운 사역을 계속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다.
때마침 학위를 취득하자 남가주대학측에서는 동양계 교수가 필요하니 교수직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해왔다. 내 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명예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교수직보다 더 크게 나를 동요시킨 게 있었다.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서 한 직원이 연락해왔다.
“우리는 당신의 신상 배경을 잘 압니다.귀국하지 말고 학위를 받는 대로 국무부에서 함께 일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모든 것을 보장해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의 직책은 국무부에서 초청하는 한국 정부의 고위 관리를 통역하는 일입니다. 그후 정식 국무부 직원으로 채용될 것입니다.”
그 직원은 내가 한국에 돌아가 일하리라는 굳은 의지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국무부 직원이 되면 앞으로 한국을 위해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말로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의 제안대로 언어능력검사를 받기로 했다. 제네바 국제 핵회담과 관련된 외교문서 3장을 읽고 기억나는 대로 원문 그대로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그외 몇 가지 테스트를 더 받았다. 3주후 워싱턴에서 언어시험에 합격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학교의 교수와 학생들은 면접을 잘보고 국무부에서 열심히 일하라며 나를 격려해줬다. 그러나 그럴수록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하나님은 분명히 내게 말씀하셨다. “어서 광주로 돌아가 보이스타운 선교사역을 계속하라.” 갈등이 컸다. 정말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선택은 그 어떤 유혹보다 강했다. 결국 75년 한국으로 돌아와 광주보이스타운 아이들과 뜨거운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인생 말년에 들어선 지금 돌이켜보니 세상의 수많은 유혹의 기로에서 망설일 때마다 하나님은 나를 항상 선교의 길로 이끌어주셨다.
정리=노희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