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16 (목) 18:12

< 조이뉴스24>
1973년 12월16일 프로 미식축구리그(NFL)팀 버필로 빌스의 러닝백 O.J 심슨이 뉴욕 제츠전에서 정확히 200야드를 전진하며 시즌 2천3야드째를 마크했다. NFL 역사상 처음으로 시즌 2천야드를 돌파한 순간이다.

NFL의 한 세대를 풍미한 심슨은 남가주대(USC) 대학 시절 하인스만 트로피(대학미식축구의 MVP상)를 수상할 정도로 미식축구에 천부적인 재질을 보였다. "심슨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감독이 인정하는 최고 중 최고"라는 대학시절 스승 존 매케이의 극찬에서 그의 비범함을 읽을 수 있다.

프로무대에 진출해서도 심슨은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단일시즌 최다, 한 경기 최다 등 러닝백이 기록할 수 있는 모든 러싱기록을 갈아치웠다. 단일시즌 최다 터치다운 득점 기록 역시 심슨의 차지였다. 버팔로에서 프로 경력의 대부분을 보낸 심슨은 79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며 인생의 '1막'을 닫았다.

그가 선택한 2번째 인생은 할리우드에서 이루어졌다. 레슬리 닐슨 주연으로 유명한 패러디 영화 '총알탄 사나이(Naked Gun)'에 조연으로 출연한 것을 비롯 '클랜스맨' 등에서 배우 경력을 이어갔다.

성공한 인생을 즐기던 심슨은 결혼생활 도중 17세의 식당 종업원 니콜 브라운과 교제를 시작했다. 브라운의 미모에 한 눈에 반한 심슨은 78년 첫 부인과 이혼한 뒤 85년 브라운과 2번째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삶이 파멸을 향해 질주하는 순간이었다.

대스타와 결혼한 브라운은 종종 친구들에게 "남편이 자신을 때린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심슨은 이 같은 가정폭력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사람들은 호남형 얼굴에 따듯한 미소를 지닌 심슨의 말을 신뢰했다.

위태롭던 결혼생활은 결국 92년 파국을 맞고 말았다. 남편의 끊임없는 의처증과 구타에 못견딘 브라운이 이혼서류를 접수한 것이다.

당시 브라운은 론 골드먼이라는 애인과 밀회를 즐기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인을 의심하던 심슨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 지는 짐작할 수 있다.

이후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94년 6월 니콜은 골드먼과 함께 살해된 채 발견됐고 곧바로 심슨은 기소됐다. 그리고 세계적 관심을 끈 재판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흑인들은 환호했고 백인들은 분노했다. 배심원제도의 문제점, 고질적인 인종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미국 사회는 끝없는 논란의 한 가운데로 빠져들었다. 심슨이 아닌 '드림팀 변호인단'의 승리라는 해석도 적지 않게 제기됐다.

비록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가장 TV 광고에 적합한 흑인 스타'라던 심슨의 이미지는 이미 구겨질 대로 구겨진 뒤였다. 민사소송에서 패해 무려 1천500만달러의 배상금을 낸 데다 최근에는 100달러에 이르는 탈세혐의까지 받고 있다.

심슨의 드라마틱한 인생은 TV를 통해 비쳐지는 스타들의 이미지와 이면에 감추어진 본성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려준다. 그들의 화려한 모습만 접할 수밖에 없는 팬들은 '스타도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한 명의 인간'이라는 얘기를 종종 잊기 마련이다. 끊임없는 스포트라이트와 환호 속의 인생이 반드시 행복한 결과를 보장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교훈을 우리는 심슨의 예에서 얻을 수 있다.

/김형태기자 horse@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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